
<시현실, 2026년 봄호, 이 계절의 시인, 이병초>
조개구이외 2편
이병초
담벼락 밑에 숯불을 피웠다
점점 벌개지는 석쇠에
조개들 깔아놓고 마늘된장 챙기러 가는데
펑펑 눈이 내린다
마당이 순식간에 하얗다
뜨건 불길에 입을 쩌억쩍 벌리는 조개들
눈송이 받아먹는 조개들을
집게로 뒤적거리며
펑펑 쏟아지는 눈
급하게 우산을 쓰고
이글거리는 불덩이 몇 개 끄집어낸 뒤
새 조개를 깔아놓는 동안에도
소복소복 쌓이는 눈
짚벼눌에 기대어 저 혼자 펑펑펑 목놓았는지
처진 눈가에 티끌 매달고
순 알몸뚱이로
소주잔에 앵기는 눈
내일이라고 달라질 게 있으랴만
조금 더 살아야겠다고
지글거리는 조갯살 마늘된장에 찍으며
펑펑펑 눈이 내린다
뙤약뙤약
어디서 뭔 소리를 들었는지 두엽이는 점심 수저를 놓자마자 뒷동산 오목한 데 가서 골마리 까고 푹 삶아낸 고사리 같은 지 거시기를 뙤약볕에 뙤약뙤약 말렸습니다 어릴 때 동무들과 불렀던
“엿장시 똥구멍은 찐덕찐덕
과자장시 똥구멍은 바삭바삭
기름장시 똥구멍은 미끄을 미끌-”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뙤약볕에 거시기를 말렸습니다 기름장시 똥구멍이 미끄을 미끌허면 이거 걸음이 걸리는 거여 헛바쿠만 도는 거여잉? 킥킥대다가 “야야, 느덜떨도 그러냐? 기름장시 똥구멍에, 미끄을 미끌에 샛바닥이 닿으먼 느덜떨 꼬추도 얼랠래험서 꼴리더냥게?” 종만이가 자르르 참기름 치던 말을 껴안고 거시기가 뙤약뙤약 일어섰습니다
미끄을 미끌 때문인지,
얼랠래험서 꼴리더냥게? 라는 말땀 때문인지
날이 갈수록 두엽이 거시기는
가지 봉통아리진 것마냥 울퉁불퉁해졌습니다
그날도 두엽이는 뒷동산 깊숙한 데로
뙤약뙤약 하러 왔는데, 아 글쎄
미자가 몽당치마 바람으로 눈알 빛내지 않겠습니까?
아니 시방 웬일이여
웬일은 뭔 웬일 너 지달리고 있었제
어저끄 보닝게 니 거시기가
태양초맹이로 오동통허게 잘 말랐던디
고 귀헌 것을 푹 젖은 디다가 담으면 쓰것냐
꼬들꼬들허니 촉촉헌 이 고추집에 담어야
꼿꼿허고 찰진 태양초 의미를 깨치지 않겄냐잉
두엽아, 시방 어쪄?
미자의 몽당치마 말빨에 두엽이는 침도 못 삼키고 먼 산 바래기가 되었습니다 땅에 발부리나 찍는 미련 곰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니가 봤냐고, 두엽이란 놈 부자지가 탱탱허게 달어올라서 소나무라도 뚫을 것맹이로 뙤약뙤약 잉잉 뙤약뙤약 찰떡 치는 꼴을 한두 번 들킨 게 아니다, 눙깔빼기 허자!” 동네방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그때부터 아들딸 셋을 낳도록 두엽이는 오뉴월 점심때만 되면 미자 눈길에 꿰여 뒷동산 깊숙한 데로 얼랠래 얼랠래 끌려갔습니다
가을밤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째 비가 질금거리더니
오늘 밤은 달이 밝네요
당신도 저 달을 보고 있나요
시냇물 소리가 낮게 깔리는 둑에 앉아
산등성이에 떠오른 늑대달과
소주를 건배하나요
비바람에 드난살다 모로 누운 갈대 옆구리를
욜랑욜랑 헤덤비는 피라미, 피라미들이
반짝 튀어 오르기도 하네요
붓 한 자루 못 얻고
어디서 드난살이나 할 꿈의 씨앗을
젖은 글씨 펴보듯
저 달에 비춰도 보겠지요
-『시현실』, 2026년 봄호.
-----------------------------------------------------------------
<시작노트>
시의 행선지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삶의 모습을 걸림새 없이 죽죽 써내려간 듯해도 어디 한 군데 틀어짐 없이 반듯하고 소소한 삶의 결에 정답게 다가서되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알랑똥땅 넘어가지 않는 시. 침전된 자의식 뒷갈피에 문명적 색감을 입히기보다는 순우리말의 맵시를 빛내는 시.
일기 수준을 간신히 벗어났으나 결국 신변잡기에 불과한 말치레를 슬쩍 비틀어 시의 갱신 또는 인생의 깨침을 운운하는 당착적 언술 말고 우리 몸에 간직된 해학의 유전자 지도를 자연스레 그려내는 시. 붓을 벼려 죽간에 한 자씩 뜻을 새기듯 우리말의 알짜를 발굴해 시의 피를 돌게 했을 치열한 시. 세간에서 거론되는 시의 융복합적 가역반응이랄지 시공을 넘나드는 생태계의 순환 가능성이라는 비평 어구 또는 서양의 버터 냄새에 중독된 천편일률적 현대성을 존중하되 조선인의 품성을 빼닮은 듯 점잖고 개구지고 야젓한 시.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는 시가 가장 좋은 시이며, 그런 쉬운 시를 쓰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까지를 잘 알고 있는 시.
이병초/ 전주 출생. 1998년 문예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구꽃 피고』『까치독사 』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편의 시 』등이 있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
출처: 네이버블로그 수수꽃다리에 대한 기억 _ 시인 박수현
https://blog.naver.com/hyunbee7/224247139935
|
[2026-04-13 13:05:57 에 등록된 글입니다.]
|
|